2018년 8월 22일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 한국 축구 역사상 최장수 감독이자 4년의 임기를 채운 것이 확실시되는 외국인 감독 파울로 벤투. 일관성과 고집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제 해답을 제시하고 증명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비공식 1호 외국인 감독 '데트마르 크라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준비하던 시절 당시 한국 축구는 선진 축구에 대한 갈증이 굉장히 컸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대한 축구협회장이었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외국인 지도자를 섭외하라"는 지시를 합니다. 협회 관계자들은 다급하게 유명하고 실력 있는 지도자를 수소문하기 시작하죠. 그때 독일에 머물던 한국인들이 한 목소리로 추천한 인물이 있습니다. 독일 내에서 축구박사로 통하며 1980년대 초반 레버쿠젠 감독으로 차범근을 지도했던 '데트마르 크라머'. 작은 체구에 인자한 표정을 지녔던 그는 전에 없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한국 선수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는데요.
무작정 트랙을 뛰면서 체력훈련을 강요받았던 선수들에게 쉬는 것도 훈련이라며 새바람을 불어넣기도 했습니다.
선수들을 상대로 기술이 아닌 마음을 건드려서 신뢰관계를 형성한 크라머 감독. 덕분에 한국 대표팀은 28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국내 코치진과의 갈등으로 금방 지휘봉을 내려놓긴 했지만 말이죠.
참고로 크라머 감독이 맡았던 대표팀은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23세 이하 선수들로 연령을 제한했던 그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식 A대표팀 감독이 아니라는 것이죠.
1호 전임 감독 '김호'
크라머와 작별이후에 1994년 미국 월드컵을 앞둔 대한민국 축구계의 화두는 전임감독제 도입이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제정적 형편이 열악한 탓에 경기가 있을 때마다 감독을 선임했고요. 그 영예는 K리그 성적이 좋았던 감독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월드컵과 올림픽 아시안컵 등 주요 국제무대에서 성과를 위해서는 전임 감독 체제로 대표팀이 구성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인력과 예산 낭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1호 전임 감독이 탄생합니다.
소속팀 없이 국가대표 1진의 감독업무에만 종사하는 전임 감독은 당시 2000만 원의 계약금에 월봉 300만 원과 활동비 200만 원을 합해 월 500만 원의 급료를 받게 되는데요. 첫 번째 전임 감독직을 수행한 김호 감독은 도하의 기적으로 대한민국을 미국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았지만 대회 성적은 2무 1패를 기록하며 대표팀과의 인연을 마무리합니다.
공식 1호 외국인 감독 '비쇼베츠'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의 기술고문에는 88 서울 올림픽 우승국 비쇼베츠 감독이 있었는데 김호 감독과의 계약이 만료되자 협회는 비쇼베츠에게 대표팀 감독직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비쇼베츠 감독이 흔쾌히 응하며 A대표팀의 첫 외국인 감독이 선임됐죠.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었던 크라머 감독이 선수들의 심리를 다스리며 잠재력을 이끌어 냈다면 비쇼베츠는 정확한 분석과 치밀한 통계로 한국의 전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는데 여기에 선수들의 훈련에 직접 참여하면서 솔선수범하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이런 체계화된 시스템을 경험한 선수들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일본을 꺾고 우승하며 성과를 나타냈고요. 올림픽에서 가나를 상대로 1:0 승리를 기록하며 올림픽 출전 사상 첫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올타임 레전드 '거스 히딩크'
한국 축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어느새 20년 세월이 흘렀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은 역대 최고의 대표팀 감독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와 한국의 만남이 이뤄진 건 질문 하나 덕분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런 설명 없이 나무에 오르라고 한다면 선수들이 나무에 오를까요?"
사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축구가 원했던 감독은 히딩크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 월드컵에서 개최국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끈 '에메 자케'감독이 1순위였습니다. 하지만 자케 감독이 프랑스 월드컵을 끝으로 현역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축구협회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논의된 차선책이 바로 히딩크 감독이었죠. 언론을 통해서 히딩크의 이름이 거론될 때 국내 축구팬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는데요. 98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에 세계와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고 한국 축구의 영웅인 차범근을 대회 도중 경질시킨 원인이 바로 히딩크였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당시 히딩크 감독은 남아공과 나이지리아 대표팀에서 러브콜을 받으면서 접촉을 하고 있던 중이었고요. 뒤늦게 개최국 한국의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적당히 조언만 해주고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한국인들은 그의 조언을 성심성의껏 받아들였고 장기간의 합숙 훈련과 강팀과의 연습경기는 물론이고 월드컵을 앞두고 K리그까지 중단시키겠다며 그를 재차 설득했습니다.
이런 적극적인 태도에 마음이 흔들린 히딩크는 앞서 공개했던 질문을 한국과 남아공에 동시에 던졌는데 불가능할 것 같다는 대답을 한 남아공과는 다르게 한국은 우리 선수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라면서 정해진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여기에 히딩크는 결국 마음을 돌려서 한국행을 결정하게 됩니다.
전권을 얻은 히딩크 감독은 고강도 체력훈련을 바탕으로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는 '토털사커';를 한국 축구에 이식했습니다. 이후의 일련의 과정은 우리 모두가 아는 그대로입니다.
외국인 감독 징크스
그런데 말입니다. 월드컵에서 외국인 감독과 관련된 속설 하나가 떠돌아다닌다는 거 아실까요?
제1회 월드컵을 시작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1934년과 1938년 유일무이하게 대회 2연패를 달성한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포초'감독,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독일 '뢰브' 감독,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디디에 데샹' 감독 모두 자국의 레전드 감독이었습니다. 때문에 축구계에서는 외국인 감독은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없다는 징크스도 만들었죠.
이런 월드컵에서 결과와 다르게 아시아권에서는 여전히 외국인 감독에 대한 기대가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2002 한일 월드컵 대성공 이후 외국인 감독들에게 연달아 대표팀 감독직을 맡겼는데요. 2010 남아공 월드컵부터 국내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 허정무, 홍명보 감독 체제로 월드컵 팀을 꾸렸지만 결국 우여곡절 끝에 외국 감독 스카우트전에 다시 뛰어들게 됩니다.
그렇게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거치고, 파울루 벤투에게는 4년의 임기 보장과 함께 코치진을 마음껏 꾸릴 수 있다는 권한까지 일임했습니다. 일본도 지난 20여 년간 유럽과 중남미에 인 여러 국적의 감독들을 선임해서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자국의 '모리야스 하지메'감독을 선임했지만 위르겐 클리스만 전 미국대표팀 감독, 전 아스날 감독인 아르센 벵거를 접촉했다는 설이 파다했습니다.
동남아시아 축구 한류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외국인 감독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 중심엔 한국인 감독들이 있죠
베트남의 쌀딩크 열풍을 일으킨 박항서 감독. 아시안 게임 4강과 동남아시안게임 2회 연속 우승 등 말 그대로 베트남 축구 ㅚ고의 신화를 작성 중이고요. 이 쌀딩크가 신화를 이어받은 공오균 베트남 23세 이하 감독은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극적으로 8강 진출을 이루어 냈습니다.
김판곤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은 43년 만에 아시안컴 자력 본선 진출, 신태용 인도네시아 감독은 2007년 이후 아시안컵 본선 진출을 이뤄내며 동남아시아 축구계에 축구 한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눈앞으로 온 4년의 결실: 이제는 증명해야 할 시간
파울루 벤투 감독 부임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2018년 9월 대표팀 정책제안 간담회에서
"히딩크 감독 이후에 임기를 3년을 채운 외국인 감독이 없다. 4년 뒤에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선 본인의 뜻을 펼칠 수 있게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라는 이 축구팬의 의견과 뜻을 같이한 축구협회는 벤투 감독에게 임기 4년을 보장했고 이제 그 결과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는 평가와 선수단과 전술에 대한 고집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는 파울로 벤투. 외국인 감독이라는 장단점을 모두 지닌 벤투호가 다가오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어느 정도의 기량으로 어떤 결과를 받아들이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먼 훗날 한국 축구를 추억할 때 2022 카타르 월드컵의 벤투호는 2002 히딩크 대표팀 못지않게 좋았다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