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의 중력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어떤 물질도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죠. 또 블랙홀은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들을 끊임없이 흡수하기 때문에 수명이 사실상 무한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랙홀을 연구하던 스티븐 호킹 박사는 호킹 복사 이론을 내놓으면서 블랙홀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호킹 복사

블랙홀 속에서 그 어떠한 물질도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기존의 생각은 틀렸다. 블랙홀은 자신의 질량을 잃어가면서 그 질량만큼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Hawking radiation입니다. 호킹 복사의 공식에 따르면 블랙홀의 수명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처음 호킹 복사 이론을 접한 과학자들은 그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블랙홀 이론과는 너무 다른 이론이라 충격에 빠졌습니다. 도대체 호킹 복사가 뭐길래 과학자들은 이렇게 혼란에 빠진 것일까요?

진공

호킹 복사가 무엇인가 알기 위해서는 진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진공이라는 단어는 실생활에서도 꽤나 자주 접하는 단어입니다.  진공이란(Vacuum) 공간 내에 물질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진공 포장된 음식을 살 때 내용물이 완전히 진공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포장 비닐에는 들어 있지만 공기를 완전히 뺀 상태로 압축시켜 진공상태라고 하면서 판매하잖아요. 그런데 엄밀히 따져보면 진공의 원리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완벽한 진공이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진공은 공간에 '물질'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진공포장으로 공기를 다 빼냈어도 그 속엔 음식물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즉 진공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말하는 완벽한 진공상태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물리학에서 말하는 완벽한 진공상태

공기만 가득한 특정 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에는 공기를 빼내는 특별한 장치도 있습니다. 이 장치를 이용하여 진공 실안에 있는 모든 공기 분자들을 빼내다 보면 1 기압, 760 Torr가 되면 진공상태가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진공상태보다 더 많은 공기를 빼내면 고 진공 상태(10-3 torr~10-7 Torr)가 되고요. 이것보다 공기를 더 빼내면 초고진공 상태(10-7 Torr~10-10 Torr)가 됩니다. 초 고진공 상태가 되면 달 표면의 기압과 비슷한데 여기에서는 1세제곱미터당 1조 개 미만의 입자가 존재하는 상태가 됩니다. 1 조개라고 하니 굉장히 많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러한 미시세계에서는 입자끼리 서로 충돌 없이 날아다닐 수 있는 정도입니다.

자연 상태의 Vacuum

이렇게 열심히 진공실을 초고진공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정도 수준이 인간이 만들 수 있는 Vacuum의 한계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인류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자연이 만들어내는 진공상태는 이겨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행성과 행성 사이 1세제곱미터의 공간에는 겨우 1000만 개의 입자가 있고, 항성과 항성 사이에는 대략 100만 개의 입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은하와 은하 사이의 공간에서는 놀랍게도 한 개에서 세 개의 수소원자 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자연 자체가 만들어낸 엄청난 진공 상태인 것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 인류의 과학기술이 엄청난 진보를 이루어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을 만들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공간 안에 수소원자 한두 개 조차도 들어있지 않은 것이죠. 이 상황은 완벽한 진공 상태일까요? 답은 고전역학에 따르면 완벽한 진공 상태입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 따르면 이 진공이라는 개념이 고전역학과는 달라지게 됩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완벽한 진공을 만들었다고 해도 텅 빈 공간이 아니라고 합니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진공

양자역학에서는 어떤 상태를 진공이라고 생각할까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공식에 따르면 진공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태가 아닙니다. 진공에서 전자와 양전자가 쌍생 성 됐다가 다시 합쳐지면서 쌍소멸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에너지가 진공에서 계속해서 요동치고 있죠. 이것을 양자 요동 혹은 양자 떨림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뭔가 툭 튀어나왔다가 슉~하고 사라진다니 현실에서 이런 경우가 어디 있을까요? 우리가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텅 비어 있는 진공이라는 공간이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에너지로 가득한 곳입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도 깨지지 않습니다. 진공에서 생겨난 전자와 양전자는 정말 짧은 시간 동안 그러니까 10의 마이너스 44승 초 동안 찰나의 순간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에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위배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진공상태를 시간을 오래 두고 조사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양자 진공은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에 현재의 기술로는 아무것도 관찰할 수 없습니다. 만약 오랜 시간을 두고 관측을 했다고 하면 고전역학의 진공처럼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되어 버립니다. 뭔가 들을수록 이상하지 않나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에너지가 있는데 측정을 못하다니 순 엉터리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당연히 믿기 힘든 이론이 맞습니다. 심지어 과학자들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양자 떨림 현상을 믿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양자 떨림 현상은 몇 가지 실험을 통해서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카시미르 효과

진공의 공간에 두 개의 금속판을 10 나노미터 간격으로 아주 가까이 둡니다. 두 개의 금속판을 워낙 가까이 붙여놨기 때문에 판과 판 사이에 존재하는 진공도 적고 그만큼 진공에너지도 낮은 상태가 됩니다. 반면에 판 바깥쪽의 진공에너지는 상대적으로 높은 상태입니다. 이때 두 금속판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신기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마치 자력이라 인력이 작용하는 듯 말이죠. 사실 이것은 자력도 인력도 아닌 바깥쪽 진공에너지가 금속판을 밀어내기 때문입니다. 진짜 신기하지 않나요? 진공상태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힘이 작용할까 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양자역학에 따르면 진공은 빈 공간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입자들이 생겨 났다가 사라지는 공간이고 에너지가 있다가 실험으로 증명이 된 것입니다. 이 실험은 1948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헨드릭 카시미르가 처음 예측했기 때문에 카시미르 효과라고 합니다. 하지만 워낙 정교한 실험이었기 때문에 50년이 지난 1997년 물리학자 스티브 러모로가 실험을 완성시켰고 카시미르 효과를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진짜 대단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반입자의 존재도 쌍생 성이나 쌍소멸 같은 것도 양자 떨림 양자 진공까지 모두 과학자들이 수학적으로만 예측을 했던 것입니다. 수학적으로 공식에 따라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 거다.라고 예측한 다음 아주 정교한 실험이나 관측을 통해 증명을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호킹 복사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을 알았으니 그럼 본격적으로 스티븐 호킹 박사가 1974년에 발표한 호킹 복사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고 스티븐 호킹 박사는 블랙홀을 연구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블랙홀 근처에서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양자 떨림 현상이 일어난다. 블랙홀 근처에서는 입자와 반입자가 쌍생 성 됐다가 쌍소멸 한다. 그런데 만약에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입자들이 쌍생 성 됐을 때 입자 하나가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나머지 하나는 빨려 들어가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

호킹 박사는 음의 에너지를 가진 입자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면 양의 에너지를 가진 입자는 블랙홀 밖으로 빠져나간다. 이때 쌍 생성된 입자 둘이 다시 만나야만 쌍소멸 할 수 있는데 음의 에너지를 가진 입자 하나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양의 에너지를 가진 나머지 입자는 우주를 하염없이 떠돌게 된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호킹 박사의 설명대로라면 한 가지 오류가 발생합니다.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고립계에서 에너지는 새로 창조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위배가 되는 것입니다. 에너지 하나가 새로 탄생한 다음 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위배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까요? 이에 대해 호킹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서 빨려 들어간 음 입자의 에너지만큼 블랙홀의 질량은 감소해야 한다. 블랙홀의 질량은 복사 에너지 형태로 블랙홀 외부로 분출된다.

이것이 바로 호킹 복사입니다. 호킹 복사에 따라 블랙홀은 마치 블랙홀 외부로 빛을 방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호킹 복사는 고전역학이 기존에 설명하던 블랙홀 하고는 다릅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면서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간다면 그 어떤 물질도 심지어는 빛조차도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스티븐 호킹의 이론에 따르면 블랙홀은 호킹 복사에 따라서 빛을 방출합니다. 아인슈타인의 빛이 없는 블랙홀과 스티븐 호킹의 빛이 있는 블랙홀 도대체 무엇이 맞는 주장일까요?

과학자들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두고 갑론을박하다가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 두 사람의 주장 중 무엇이 맞는지는 호킹 복사를 관찰해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호킹 복사에 따라 블랙홀이 방출하는 복사에너지는 관측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약한 힘이었습니다. 그 힘은 대략 10의 마이너스 30승 와트 정도로 현실적으로 이렇게 미약한 힘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블랙홀은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과학자들은 호킹 복사를 실제로 관측하는 것은 현재의 인류가 가진 기술로는 대단히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호킹 복사에 따라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발견되었습니다.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생성됐다가 빨려 들어가는 입자의 에너지만큼 블랙홀의 에너지가 호킹 복사의 형태로 분출된다고 했습니다. 이 현상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블랙홀의 질량은 아주 천천히 감소하다가 끝내는 증발하게 됩니다. 블랙홀의 소멸 속도는 블랙홀의 질량이 작을수록 더 빨라집니다. 계산에 따르면 블랙홀들의 평균 수명은 10의 88 승년 인간의 입장에서 아니 우주의 나이에서 블랙홀을 바라봐도 정말 긴 수명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서 우주가 많이 늙었을 때 이 넓고 넓은 우주에는 블랙홀 밖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우주 곳곳에 구멍이 슝슝 뚫려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호킹 복사의 공식에 따라서 블랙홀의 온도는 블랙홀의 질량에 반비례합니다. 질량이 높으면 온도는 낮아지고 질량이 낮으면 온도는 높아지는 것이죠. 그런데 태양 질량의 10배 무거운 블랙홀은 아주 가벼운 블랙홀이고 따라서 온도는 높을 텐데 그래 봐야 태양 질량을 10배 블랙홀의 온도는 절대 온도의 1억 분의 1 캘빈도 안된다고 합니다. 또 호킹 복사를 측정한다면 블랙홀의 온도도 바로 측정할 수 있다고 하는데 블랙홀에서 방출하는 복사 에너지가 너무나도 미약하기 때문에 호킹 복사 관측으로 실제 블랙홀의 온도를 측정하는 것도 대단히 어렵다고 합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호킹 복사 이론으로 블랙홀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여럿 밝혀냈습니다.

  • 블랙홀은 빛을 방출한다.
  • 블랙홀은 수명이 있다.
  • 블랙홀의 온도를 측정할 수 있다.

또 미시세계를 탐구하는 양자역학 거시 세계를 탐구하는 일반상대성이론 이렇게 절대로 합쳐질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이론을 양자중력이론으로 합쳐내면서 앞으로 물리학계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물리학자들에게 평생의 숙제도 함께 안겨줬는데요. 바로 정보 역설입니다. 호킹 복사는 대단한 이론이 맞습니다. 하지만 정보 역설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죠. 양자역학에서 정보 역설에 따르면 정보는 새롭게 창조되거나 소실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호킹 복사는 입자 하나가 블랙홀에 들어가고 블랙홀이 호킹 복사의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하는 과정에서 정보 역설에 위배되게 됩니다. 물리학자들은 거의 40년을 이 정보 역설을 풀어내기 위해서 오늘도 여전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아마 블랙홀의 정보 역설을 풀어내는 과학자는 무조건 노벨 물리학상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평가되고 있는데 다음 포스팅에서는 블랙홀의 정보 역설이 무엇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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