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계절 중 여름을 싫어하는 이유는 습하고 눅눅한 날씨가 계속되는 장마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억 3천만 년 전 트라이아스기 후기에는 무려 2백만 년 동안이나 장마가 지속된 시기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것을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이라고 합니다. 지구 역사상 가장 긴 장마와 함께 지구 생태계에 특별한 동물을 등장시킨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페름기에 이어 트라이아스기도 지구는 극도로 건조한 기후였습니다. 이유는 판게아라고 하는 초대륙 때문이었는데요. 바다와 인접한 해안가를 제외 하면 광활한 대륙의 중심으로 갈수록 강수량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지층의 대부분에는 붉은 사암층이 발견됩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건조한 기후는 지층 활동으로 인해 판게아가 지금의 대륙으로 분열될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

1989년 영국의 지질학자였던 Michael J. Simms와 Alastari H. Ruffell 박사는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관점을 뒤집는 발견을 하게 됩니다. 이들은 유럽에 퍼져 있는 케우퍼 (German Keuper) 지층 중 2억 3천4백만 년 ~ 2억 3천2백만 년 전 지층에서 강에서만 발견되는 역암들과 함께 대규모 호수에서나 발견되는 퇴적물, 그리고 늪지대의 흔적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증거들이 약 200만 년 동안 지구 전역이 비가 자주 내리는 기후로 바뀌었음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라고 생각했고, 이 시기를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지질학자인 행크 비셔를 비롯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논문의 증거 부족을 지적하며 강과 호수가 생긴 것은 일시적인 사건이었을 뿐 지구 전체의 기후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어렵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이렇게 두 과학자의 주장은 그대로 묻히는 듯했습니다. 

200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는 고대 호수의 흔적, 미 서부에서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젖은 토양 지층의 흔적, 중국에서는 대규모 강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이 흔적들이 모두 심즈와 러펠이 주장한 카르니안절에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이 전 지구적 사건이었다는 주장은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즉 트라이아스기 후기 200만 년 동안 지구 전역엔 비가 내렸고 그로 인해 메말라 있던 땅엔 큰 호수나 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죠. 그런데 물이 많아진 지구는 생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된 것 같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지난 2020년 지질학자인 자코프 달 코르소는 카르니안절 우기 사건은 5대 대멸종까지는 아니지만 해양 생물의 35%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200만 년 동안 우기가 이어져 강이 형성되었고 강을 통해 바다로 유입된 다량의 무기염류들이 바다의 부영양화를 불러와 바다 표면에 해양 플랑크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바닷속 용전 산소량이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경골어류의 다양성이 51~62%가 감소하였고 암모나이트류와 고노 돈트류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탈라 토사 우루스 같은 해양 파충류도 이 시기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이 긴 시간 동안의 우기는 지구 육상 생태계에 새로운 지배자를 등장시켰습니다. 

공룡

우기가 찾아오기전 지구 육상 생태계는 피토 사우루스 류가 속한 크루토 타르 시류 같은 지배 파충류들과 린 고사 우루 스목의 파충류들 그리고 디기 노논 같은 단궁류들의 세상이었습니다. 물론 공룡도 트라이아스기에 일찌감치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당시 생태계 내 비율은 5~10%에 불과했죠. 그런데 카르니 안절 우기 사건을 거치면서 공룡의 비율은 90%까지 폭증하게 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식물상의 변화

우기사건 이전 육지가 건조했을 때는 크기가 작은 초목 위주였지만 강수량이 늘어나면서 침엽수나 소철류 같은 키가 크고 잎과 줄기가 질긴 식물들이 많아졌습니다. 당시 공룡들은 다른 초식동물과는 달리 소화를 도와주는 위석을 지니고 있어 질긴 식물도 쉽게 먹을 수 있었고 먹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직립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키가 큰 식물을 상대로 먹이 활동을 하기에도 유리했죠. 반면 기존의 초식동물들은 이렇게 변화하는 식물상에 적응하지 못해 점차 도태되었습니다. 특히 공룡은 기낭을 지닌 덕분에 산소 농도가 낮았던 당시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호흡할 수 있었던 것도 개체수 증가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공룡들은 경쟁자들이 줄어든 생태계의 빈 공간을 빠르게 채워가며 번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구 나이 45억년중 200만 년이란 찰나의 시간 동안 내린 빗줄기가 공룡시대의 서막을 연 셈이죠. 그런데 대우기 사건은 왜 일어난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지만 2가지 유력한 가설이 있습니다. 

화산활동

첫째로 화산활동의 가설로 2억 3천2백만년전 캐나다 서부에 위치 한 렝겔리아 지층에서 대규모의 화산 활동이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당시 화산 폭발로 다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되었고 이는 지구 온난화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물의 증발이 활발해지며 강수량의 증가로 이어져 많은 비가 내렸다는 가설입니다. 

조산 운동

두 번째는 조산 운동 가설인데요. 바다에서 융기한 킴 메리아 산맥지층은 약 2억 5천만년 전부터 천천히 위쪽으로 이동했는데 그 결과 신테디스 해(sea)가 열리고 구테디스 해는 점점 닫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테디스 해에서 만들어진 구름이 킴메리아 산맥에 의해 차단되어 육지로 이동하지 못했고 구름들은 계속 쌓여 크고 강한 비구름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 비구름은 주변 판게아 대륙에 지속적으로 비를 뿌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주장입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00만 년 간의 우기가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장마는 별 볼 일 없던 한 동물을 잠시나마 지구의 지배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수억 년 동안 지구를 지배하며 살아왔고, 멸종한 지금도 그 이름과 흔적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어쩌면 공룡들에게 비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봄비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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