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지구 상 최강대국. 세계 최초의 민주 공화국, 국방비로만 천조를 기꺼이 쏟아붓는 나라, 러시아, 캐나다에 이은 세계에서 3번째로 영토가 넓은 나라. 기축 통화인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 낼 수 있는 나라, 지구의 경찰을 자처하며 전 세계를 군사 작전범위로 두고 있는 나라, 경제력 압도적 1위, 2차 대전에서는 독일과 일본을 상대로 참 교육을 시전 한 나라 예상하셨나요? 예상하셨겠지만 바로 미국을 설명하는 말들입니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지리적인 문제로만 한번 짚어 보겠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강의 국가, 가장 관대한 제국 미국은 대체 어떻게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요?

축복받은 위치

미국이 자리 잡고 있는 북 아메리카 땅 그 자체로만 한번 보겠습니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제외한 모든 영토가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중위도 지역에 정확히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제일 살기 좋은 위도에 딱 자리 잡고 있죠. 태양계에서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편하겠네요. 게다가 미 동부에서 중서부까지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에 대평원이 펼쳐져 있어서 식량 자급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남아도는 식량을 수출까지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실예로 옥수수 재배 면적만 놓고 봐도 일본 열도 전체 크기와 비슷한데 매년 과잉생산으로 인해 남아도는 옥수수가 농업이 주요 산업인 미 중서부 주들의 큰 고민거리 일정도 입니다. 

미국의 바로 위에 있는 이웃나라 캐나다는 위도상 너무 북쪽에 위치하여 대부분의 땅이 동토, 즉 얼음왕국이죠. 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는 캐나다 보다 더 심한 동토를 자랑합니다. 나라 하나가 대륙으로 인정받는 호주는 일부 해안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막지대이고 중국도 서부로 가면 사막 고원 히말라야 산맥과 동서남북 주변 모든 곳에 이웃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안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와 반면에 미국은 북쪽에는 캐나다, 남쪽에는 멕시코를 제외하면 이웃나라가 없습니다. 동쪽과 서쪽에는 태평양과 대서양이 있어 미국 본토를 공격하려면 드넓은 대양을 건너야 하는 핸디캡을 안고 시작해야 하죠. 다만 위아래가 막혀 있어 좌우 대양을 오가는 것이 문제였는데 미국은 운하가 필요하면 나라를 만들기도 합니다. 콜롬비아에서 파나마를 독립시킨 뒤 지협을 뚫어서 운하를 만들어 버리면서 그 문제를 해결했죠. 또한 알래스카, 하와이도 자국 영토에 포함되어 있어서 북극권이나 태평양에도 확실한 거점을 두고 있습니다. 

영토가 엄청 크긴하나 동서로 너무 길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교통망도 조밀하게 연결이 가능했습니다. 러시아는 철도를 놓기 전까지 시베리아에 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여름에 녹았다가 겨울에 얼었다 하는 진흙탕이라서 차로 다니기도 불편하기 때문에 지금도 시베리아에는 철도 주변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반면에 미국은 차로 다니기 너무 좋은 데다가 이미 오래전 대륙 횡단 철도로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에 물류 이동이 원활했습니다. 그럼 철도가 없었을 때는 어땠나고요? 미시시피강과 미주리강, 오하이오 강 등이 미국 중부와 중서부를 골고루 커버하고 있었습니다. 농업의 원천인 동시에 수운에도 매우 편리해서 철도가 없을 때부터 전 세계 최고의 운송효율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현대에도 미국의 농산물들은 미시시피 강 수로를 따라 모아서 수출하고 있습니다. 미시시피 강이 자연의 대운하 그 자체입니다. 

지하자원

그나마 미국지형에서 좀 장애물이다 할 수 있는 것이 로키산맥입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기초산업에 필요한 다양한 광물들은 기본이고 오늘날 첨단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희토류까지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습니다. 근데 재밌는 것은 광물을 채굴하려면 환경이 오염되니까 외국에서 수입을 하고 있습니다. 네바다 주와 캘리포니아 주 접경지대에 아주 우수한 상태의 희토류들이 매장되어 있는데 지금 전 세계 희토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이 미국에 희토류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무역보복을 한다면 그냥 마운틴패스에서 채굴하면 됩니다. 첨단 기계 산업이 발단한 일본도 중국의 희토류 수출 불가라는 무역보복 조치에 꼬리를 내린 적이 있는데 미국에게는 이런 얄팍한 수는 통하지 않는 것이죠. 

잘 몰랐겠지만 미국은 전 세계 석유 생산량 1위 국가입니다. 애초 석유가 석탄을 대신해 실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 자체가 미국이었습니다. 1859년 펜실베이니아에서 유전 굴착 기술이 발명되어 가격 경쟁력이 생기면서 지금의 대 석유시대가 시작된 것이죠. 오늘날 석유로 유명한 중동 국가들도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유전을 개발하였습니다. 원유 하면 생각나는 사우디아라비아도 1930년대에 유전이 터졌는데 미국은 중동보다 훨씬 빠른 1901년에 텍사스 유전이 발견되어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텍사스 유전이 점점 고갈되고 중동 국가들이 석유를 마구 뽑아내기 시작하면서 생산량이 주춤했지만 21 시기에 이르러 미국에서는 셰일가스, 셰일 오일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석유생산량 1위임에도 불구하고 석유 수입까지 1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산유국들이 자국에서 소비되는 원유 외에는 모두 수출을 하는데 미국은 생산력도 소비력도 어나더 레벨인가 봅니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이렇게 축복받은 땅에 살고 있었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왜 문명도 제대로 일으키지 못하고 오히려 유럽인들에게 대륙을 통째로 빼앗기고 만 것일까요? 정말 다양한 이유와 우연이 겹쳐있겠지만 근본 이유는 아메리카 대륙이 동서로 긴 것이 아니라 남북으로 길게 생긴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특이점은 짧은 동서간 거리

현재는 동서로 짧은것이 미국의 장점이 되지만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것은 절대 장점이 될 수 없습니다. 동서로 교류하는 것이 남북으로 교류하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비슷한 위도상에 위치한 문명들끼리는 비록 내륙의 사막이나 산맥 등의 장애물이 있다 손 치더라도 동서로 기후가 비슷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지나다닐 수가 있습니다. 세계 4대 문명이 탄생한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지형은 동서로 아주 길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기 좋은 중위도 지역이 넓게 분포해있고 쌀이나 밀 같은 식물들이 각지에서 작물화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작물화된 식물은 문명 사이에서 교류되어 퍼져나갔습니다. 가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라시아에는 소, 말, 돼지 , 닭, 양과 같은 가축들이 분포되어 있었는데 이들을 농사, 이동, 식량, 의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며 가축화가 진행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가축들이 영향으로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창궐하고, 세대를 거듭하며 면역력까지 갖추게 되었죠. 반면 아메리카 대륙은 동서로 짧고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지형입니다. 그래서 문명이 발생하기 좋은 중위도 지역이 특정지역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북쪽에는 수렵, 채집으로 살아가야 하는 동토가 넓게 퍼져있고 남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데 중앙아메리카에 이르면 거의 지협 수준으로 좁아집니다. 또한 남아메리카에는 거대한 열대우림과 고산지대가 펼쳐지다가 아르헨티나 위치에 가서야 살기 좋은 중위도 지역이 나타납니다. 북아메리카의 중위도 지역과는 달리 남아메리카의 중위도 지역은 면적이 아주 좁습니다. 그냥 뾰족한 형상을 하고 있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메리카의 문명은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중위도 지역이 아닌 좁디좁은 중앙아메리카 정글지대(아즈텍 문명)와 남아메리카의 고산지대(잉카문명)에서만 크게 발전했습니다. 옥수수와 같은 식량작물, 그리고 라마나 알파카 같이 짐이라도 운반할 수 있는 가축들이 그나마 그쪽에 몰려 있었거든요.

여기서 중요한 차이점이 발생합니다.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는 비슷한 위도 라인에서 여러 문명들이 각자 하나만 발명하면 끝입니다. 무슨 얘기냐면 이집트에서 발명된 문자,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듯이 한 문명에서 발명된 기술은 각각의 문명으로 전파되고 또 발전시켜 나가게 됩니다. 물론 평화적인 방법보다는 전쟁을 통해 전파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애도 어른도 문명도 싸우면서 크나 봅니다. 이와 반대로 중남미 문명은 혼자서 이런 테크트리를 모두 타야 했습니다.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거대 이웃 문명이랄 게 없었으니까요. 북중미의 아스텍 문명, 안데스의 잉카문명이 각자 나름의 문명을 꽃피웠지만 이들은 남북으로 떨어져 있었고 이 둘을 잇는 중앙아메리카는 끔찍한 정글로 막혀 있어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왔을 때까지 서로가 존재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결국 총,균,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철기의 사용법조차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구리를 가공하는 야금술까지는 익혔으나 무기나 농기계와 같은 실용성까지 갖추지는 못했고 농사나 전쟁에서는 흑요석과 같은 날카로운 돌을 이용하는 석기 문명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축들을 대량 사육할 일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수천 년간 진화한 전염병을 접할일이 없었고 유럽인들에게서 전파된 세균으로 인해 면역력이 없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축복받은 땅이 있었지만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지혜로운 문명이 없어 잠들어 있던 북아메리카. 이미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충분히 발단한 야금술, 화약무기, 소, 돼지, 말과 같은 가축들 그리고 강력한 전염병까지 보유하고 있던 유럽인들이 들어오자 면역력이 없어 픽픽 나가떨어지던 원주민들을 대신해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노예들로 대체되어 버렸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중국의 화북지역, 북아프리카와 같이 구대륙의 전통적인 곡창지대는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던 15세기쯤 되면 이미 지력이 상당히 고갈돼서 예전만큼의 높은 생산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단 한 번도 농업문명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던 북아메리카는 지력이 충만한 상태였습니다. 씨앗을 막 뿌려놓기만 해도 작물이 알아서 막 자랄 정도로 농사가 잘되었어요. 유럽 정복 민 들은 구대륙의 발달된 문명과 신대륙의 지리적 이점을 아주 잘 활용합니다. 특히 아메리카에서 가장 넓은 중위도 지대인 미국 지역은 일찍이 영국의 지배 아랫 가장 생산력 높은 식민지로서 파워가 막강했습니다. 이후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독립 후에도 대륙 서쪽에 이렇다 할 경쟁국가가 없으니 동부까지 영역을 확대해버리죠. 태평양 연안이나 북아메리카 중부 대평원은 유럽인들 입장에서는 접근성이 엄청 떨어지니 침략받을 일도 없습니다. 남미 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나라가 거의 동시에 식민지배에서 독립을 해서 한 나라로 합쳐지지 못했습니다. 근데 미국은 동부에서 시작했지만 서부는 사실상 빈집이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주가 생겨도 독립한다고 설치는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남북전쟁으로 한 번의 위기를 겪긴 했지만 이 고비 잘 넘기고 나서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위기 없이 잘 살아오고 있습니다. 

지형적 측면에서 미국이 왜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사실 맵 빨만 좋다고 최강대국이 되는 건 아니죠. 지리적인 특성이 모든 문명의 운명을 이미 정해 놓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알고 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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