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카자흐스탄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경제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정부가 가격의 상한선을 정해서 관리해오던 LPG 가격의 상한선을 폐지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서 반정부 시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시위가 점점 과격해지고 또 이를 강경 진압하면서 유혈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죠. 왜 카자흐탄의 국내 문제에 러시아는 군대를 투입한 것일까요?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 러시아군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러시아가 이끄는 평화유지군은 원래 집단안보조약기구(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이라고 하는데요. 소련이 붕괴되고 1992년에 Collective Security Treaty가 만들어집니다. CST는 예전 나토에 대응해서 만들었던 바르샤바 조약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02년 재편이 되면서 CSTO가 됩니다. 이 기구에는 러시아,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그리고 카자흐스탄이 멤버로 가입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카자흐스탄의 시위에 2500명의 평화 유지군을 보냈다는 것이 유독 화제가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러시아군 개입이 논란인 이유

첫 번째로 카자흐스탄 국민들이 정부의 LPG 가격 정책에 불만을 품고 거리로 뛰쳐나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것인데 왜 국내 시위에 동맹군이 들어왔느냐입니다. 두 번째로 사실 CSTO에 군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군대를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죠. 2020년 벨라루스의 초대 대통령인 알렉산드르 카센 카가 현재까지 집권 중으로 대선 결과에 항의하면서 일어난 벨라루스 역사상 최대의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을 때도 그렇고 나고르노카라바흐(아르차흐)에 대한 영유권 문제를 두고 벌어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전쟁이 있었을 때도 군대를 보내지 않았었는데 유독 이번에만 보냈다는 것이 많은 눈길을 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평화 유지군은 카자흐스탄의 토카예프 대통령이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CSTO 조약의 4조에 의하면 회원국이 외부 세력의 침략을 받으면 모든 회원국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여 회원국들이 군대를 보낼 수 있게 되어 있는데요. 이 부분을 이용해서 토카예프 대통령이 군대를 보내달라고 이야기를 했고 이에 러시아가 화답하여 평화유지군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카자흐스탄은 어떤 나라인가?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남쪽에 위치하여 국경을 무려 7400km나 함께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한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지고 있고, 세계에서도 9번째로 큰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원도 굉장히 많이 묻혀 있습니다. 전체 수출 중 천연자원이 비중이 약 70%에 달할 정도입니다. 사실 가진 것도 없고 인프라도 없지만 경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자원을 이용하여 외국과의 경제 협력을 이끌어 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보와 경제면에서 다각화 외교를 추진해야겠다고 일찌감치 정리를 한 것입니다. 이걸 두고 이념에 관계없이 모든 나라와 외교관계를 수립하려는 정책이라 하여 전방위 외교 혹은 Multi-vector Foreign Policy라고도 이야기를 합니다. 다르게는 다자주의 또는 균형외교라고도 합니다. 중앙아시아의 5개국 중에는 이 점을 가장 잘 활용을 했습니다. 그래서 외국 투자도 상당히 많이 이끌어 냈습니다. 중국과 유럽과는 에너지 자원을 이용해서 관계를 유지해 나갔고요. 러시아와는 아무래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의 지나친 영향력 아래 있지 않으려고 약간은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보를 두고 카자흐스탄 유라시아 주의라고도 이야기를 하는데요. 러시아와의 연계성을 끊지 않으면서도 좀 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외교 정책을 수용하는 방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정책을 추진한 사람은 30년간 독재를 했었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입니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독재자이긴 했지만 이런 부분은 확실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카자흐스탄의 위치를 잘 활용해서 외국 투자를 많이 이끌어 냈고 그래서 중앙아시아의 큰형 국가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의 권위주의 정권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이런 외교 정책만큼은 상당히 괜찮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1989년에 카자흐스탄의 지도자로 올라선 이래 2019년까지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만 30년을 꽉 채운 것인데요. 한 시대 동안 대통령을 한 독재자 중의 독재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업적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카자흐스탄의 카자흐 화입니다.

카자흐스탄의 카자흐화 이게 무슨 말인지 의아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1991년 카자흐스탄이 독립을 했을 당시 인구 구성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1989년의 인구 구성을 보면 러시아인이 38% 정도 그리고 카자흐 민족이 약 39% 정도였습니다. 그 외 폴란드, 우크라이나, 타타르인 그리고 고려인이 함께 모여 살고 있었죠. 특히 러시아와 접경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북부에는 많은 러시아인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었는데요. 그러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많은 러시아인들이 자연스럽게 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건 역이민(return migration)이라고 합니다. 이후 본국으로 돌아간 러시아인의 수가 무려 15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소련의 붕괴뿐만 아니라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카자흐화 정책이 주효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카자흐화 정책 중에는 해외동포 귀환 정책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카자흐족의 인구 규모를 좀 늘려 보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언어정책도 있습니다. 카자흐어의 공식 지위를 인정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많이 사용되도록 장려하고 정부 요직에도 카자흐 인을 많이 임명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북부의 카자흐족들을 이주시키고 원래 수도였던 남쪽의 알마티를 떠나서 북쪽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이곳이 아스타나, 지금의 누르술탄입니다. 2010년 이후에는 많은 러시아인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카자흐스탄을 떠났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카자흐스탄도 경제 타격을 굉장히 많이 받았고요.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국민이 되기보다는 러시아의 국민이 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 러시아로 돌아간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30년 동안 독재를 하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결국 권좌에서 물러 나온 것이 2019년입니다. 그는 왜 정권 이양을 결심한 것일까요?

경제가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하려면 경제적으로 호황이거나 독재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많은 혜택을 줘야 하는데 불황으로 인해 그 부분이 충족이 안되니까 국민들의 불만이 쌓이게 된 것이죠.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경제구조가 이대로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카자흐스탄의 경제구조가 천연가스라든지 원유와 같은 지하자원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뭔가 개혁이 필요한 상태였고요. 무엇보다도 부의 불균형과 부정부패가 극심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부의 55%가 전체 인구의 0.0009%인 162명에게 집중되어 있었다고 하니까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한 나라의 부를 장악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

그럼 2대 대통령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는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점찍은 사람이었습니다. 외무부 장관과 제네바 UN 사무국장을 지낸 토카예프 대통령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그대로 계승할 거라고 점쳐졌던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경제 발전에 힘쓰겠다고 공언을 했습니다. 심지어 "2050년까지 카자흐스탄을 세계 선진국 30위권에 진입시키겠다"라는 야심 찬 선언을 했습니다. 결국 권력을 이양했지만 여전히 나자르바예프는 국가 안보위원회의 위원장, 명예 상원의원, 헌법평의회 종신위원, 인민대회 명예의장, 튀르크 국가기구 명예회장, 누르오 탄 당 명예총재 등의 직책을 맡고 있으며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이 얘기하기를 이 사건을 계기로 나자르바예프의 영향력은 막을 내릴 것이다라고 합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사흘 뒤인 1월 5일 토카예프 대통령이 나자르바예프의 국가 안보위원회의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태가 좀 안정되고 난 후에 토파예프 대통령은 내각을 총사퇴시키고 새로운 총리 알리한 스카일 로프를 임명합니다. 이 사타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전 정부가 혜택을 주었던 대기업 그리고 이전 정부에게 돌리는 모습을 보여줬죠.

러시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일단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관계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카자흐스탄 입장에서는 지역 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의 눈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와 크림반도 병합 문제, 그리고 최근 벨라루스-러시아 국가 통합 합의 등을 보면서 이렇게 되면 러시아가 카자흐스탄도 탐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소련이 붕괴된 후 독립국가가 되었지만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을 여전히 마음속의 내 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4년 크림반도가 병합된 후에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유스 포럼에 가서 연설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카자흐스탄도 우크라이나와 같은 전철을 밟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푸틴은 카자흐 민족은 자신들의 국가를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번 카자흐스탄 사태가 우크라이나, 조지아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국내 사정이었고 경제문제로 국한되었기 때문이죠. 또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고요. 민주주의 그리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보장, 그리고 반대파의 의견을 탄압하거나 묵살해왔던 정권에게 반발하는 성격이 훨씬 더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정부 시위였지만 우크라이나나 다른 동부 유럽처럼 유럽연합 혹은 나토 가입을 하겠다든지 친 서방 정책을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도 간결합니다. LPG 가격을 낮추고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고, 지역 선거에서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내리지 말고 직접 투표권으로 선출 등을 요구한 것입니다.

관전 포인트

토카예프가 강경하게 대응한 것은 사실입니다.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라고 칭하기도 했었고 사살해도 좋다 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시위가 한창일 때는 SNS를 전부 차단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국내 이슈로 반정부 시위를 시작했는데 돌아가는 모양새는 그보다 더 큰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카자흐스탄은 영토가 클 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국가이며 자원 매장량이 어마어마합니다. 원유만 하더라도 OPEC 플러스에 가입해 있을 정도로 많이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전 세계 우라늄의 40%가 카자흐스탄에서 생산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암호화폐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채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모로 봤을 때 꽤 중요한 국가라 할 수 있죠. 물론 러시아가 지금까지는 우크라이나처럼 중요한 곳이다라고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돌아가는 정세를 보면 앞으로 어떤 식으로 관리가 들어갈지 미지수입니다. 그리고 토카예프 대통령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단절하면서 뭔가 친 러시아적인 행보를 걸을 것 같다 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요. 앞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지 예의 주시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연초부터 국제뉴스를 뜨겁게 달궜던 카자흐스탄 소식을 다뤄봤습니다. 내용이 유익하셨다면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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